은퇴와 함께 서울 생활을 접고 시골로 이사를 가는 부부를 위한 집이다. 말하자면 두 사람의 인생에서 한 챕터가 끝나고 새로운 챕터가 시작될 때 짓게 되는 집이었다. 우리는 이 집이 새로운 삶으로의 정착을 도와주는 길잡이, 같이 지내면 기분 좋은 친구 같은 집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쩌다 보니 비교적 큰 면적의 땅을 구매하게 되었으나, 부부는 힘이 닿는 데까지만 밭을 가꿀 것이라고 했다. 지금까지 도시인으로 살아온 두 사람이 이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통제된 환경인 실내 공간과 그렇지 않은 자연 사이에 마음 편히 쓸 수 있는 중간적인 공간이 있어야 할 것 같았다. 흙 묻은 신발을 벗어 둔다거나, 햇볕에 무언가 말린다거나, 의자라도 꺼내두고 시원한 물 한 잔 마실 수 있는 공간. 평평한 바닥, 무언가 걸 수 있는 틀, 약간의 차양으로 이루어진 공간.
이런 중간적인 완충 공간이 필요하다는 확신이 생기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인근 농가에는 하나같이 마당을 향한 렉산 캐노피가 달려 있었다. 비를 막으려고 지붕을 덮는데, 해를 완전히 가리면 집이 너무 어두워진다. 그렇다고 투명한 면으로 막으면 아래가 너무 뜨거워지니 초록색이나 흑갈색의 반투명 렉산으로 캐노피를 만들었을 것이다. 우리는 조금 다른 버전의 캐노피를 만들고자 했다.
우리가 만든 루버-거터(Louver-Gutter)는 위치에 따라 한 겹 또는 두 겹으로 이루어져 있다. 남측에 위치한 두 겹의 루버-거터는 거의 모든 빗물을 막아주면서 빛과 바람을 투과시킨다. 캐노피에 흐르는 때국물을 볼 필요도 없고, 대류가 가로막히지 않아 여름에 더 쾌적해진다.
가족과 친구가 종종 방문하겠지만, 기본적으로 이 집은 두 사람을 위한 집이다. 우리는 두 사람이 각자 다른 일을 하고 있어도 함께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집으로 만들었다. 침실, 거실, 취미실이 구획되어 있긴 하지만 벽과 천장이 뚫려 있어 시선이 통하고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이 집에서는 재봉틀을 하면서도 밭일을 하러 드나드는 남편의 얼굴을 보고, TV를 보면서 아내의 기척을 들을 수 있다.
급경사에 위치한 대지는 지나칠 정도로 아름다웠다. 반짝이는 호수, 계단형의 밭, 호수 건너편 마을이 겹쳐 보인다. 매일을 사는 살림집에 전망이 대수겠냐만은 일하다가 잠깐 고개를 들어 마주치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질 것 같은 풍경이다. 집과 밭을 가꾸는 것은 제법 고된 일이겠지만, 이 집과 풍경이 함께라면 두 분이 조금이라도 더 편한 마음으로, 건강하고 보람된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으리라.
위치 :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규모 : 지하1층 지상 1층 / 연면적 238.73 제곱미터
설계기간; 2021. 10. ~ 2022. 3.
설계 : 건축사사무소 김남 (김진휴, 남호진, 조경학(담당), 이유나)
용도 : 단독주택
시공 : 무일건설(주)
